요한복음 15:1-8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정원사이시다.
2 내 안에서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마다 아버지께서 잘라 내시고, 열매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려고 깨끗하게 다듬으신다.
3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해 준 말 때문에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4 내 안에 있어라. 그러면 나도 너희 안에 있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가지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않으면, 스스로는 열매를 맺을 수 없다.”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사람이 내 안에 있고 내가 그 안에 있으면, 그는 열매를 많이 맺는다. 그러나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6 누구든지 내 안에 있지 않으면, 그 사람은 꺾여서 말라 버리는 가지와 같다. 사람들이 그 마른 가지를 주워다 불에 던져 태워 버릴 것이다.
7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으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이루어질 것이다.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어 내 제자인 것을 나타내면 이것으로 내 아버지께서는 영광을 받으신다."

1 "I am the true grapevine, and my Father is the gardener.
2 He cuts off every branch of mine that doesn't produce fruit, and he prunes the branches that do bear fruit so they will produce even more.
3 You have already been pruned and purified by the message I have given you.
4 Remain in me, and I will remain in you. For a branch cannot produce fruit if it is severed from the vine, and you cannot be fruitful unless you remain in me.
5 "Yes, I am the vine; you are the branches. Those who remain in me, and I in them, will produce much fruit. For apart from me you can do nothing.
6 Anyone who does not remain in me is thrown away like a useless branch and withers. Such branches are gathered into a pile to be burned.
7 But if you remain in me and my words remain in you, you may ask for anything you want, and it will be granted!
8 When you produce much fruit, you are my true disciples. This brings great glory to my Father.

가을이 되면 생각나는 시가 있습니다. 릴케 (Rilke, Reiner Maria, 1875-1926)의 ‘가을날’이라는 시입니다. 한번 들어 보시겠습니까?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드리우시고,
들판에는 바람을 풀어 놓아 주소서.
마지막 열매들을 영글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南國)의 따뜻한 날을 베푸시어,
열매들이 온전히 무르익게 하시고
진한 포도주에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해 주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홀로 있는 사람은 오래도록 그럴 것이며,
깨어서,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이고
낙엽이 떨어져 뒹굴면, 불안스레
가로수 길을 이리저리 헤맬 것입니다.
 
“마지막 열매들을 영글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따뜻한 날을 베푸시어 열매들이 온전히 무르익게 하시고, 진한 포도주에 마지막 단 맛이 스미게 하소서” 마지막 뜨거운 햇볕 속에서 익어가는 열매들을 묘사한, 가을의 깊은 맛을 느끼게 하는 시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 속에 이런 말씀이 있었습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어 내 제자인 것을 나타내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8절) 이 말씀이 New Living translation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When you produce much fruit, you are my true disciples. This brings great glory to my Father.” 또 이 말씀이 ESV (English Standard Version)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By this my Father is glorified, that you bear much fruit and so prove to be my disciples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어서 내 제자인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이 말을 거꾸로 말하면, 이런 말씀이 됩니다. “너희가 열매를 맺지 못해서 내 제자인들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내 아버지께서는 영광을 받지 못할 것이다.”
 
문제는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여기서 ‘열매’라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을 증명하는 일들을 말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의 제자라는 열매들을 세상에 보여주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이번 2018 ReNEW 주제가 선교입니다. 복음과 교회와 선교라는 세 가지 토픽을 3년 사이클로 돌려가면서 열립니다. 지난 해에는 ‘교회’라는 토픽을 다루는 해였기 때문에 ‘에클레시아’라는 주제로 ReNEW가 열렸습니다. 내년에는 처음으로 돌아가서 복음을 토픽으로 열리게 될 것입니다.
이번 ReNEW는 선교사 지원생을 선발해서 선교사를 파송하는 집회가 아닙니다. 이번 ReNEW 주제가 ‘프로클레이머스 (Proclaimers)’입니다. ‘복음을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동시에 ‘프로클레이머스’라는 말은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여주는 사람들’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열매가 열리면 사람들이 모두 그 열매를 바라보듯이, 저 멀리 아프리카로 선교사로 나가지 않아도, 우리 크리스천들이 각자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통해서 “야, 저 사람들이 믿는 하나님을 대단하신 분이구나!” 이렇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이게 될 것입니다. 2018 ReNEW는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크리스천으로서 어떻게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 한국과 미국에 계시는 훌륭한 강사님들을 통해서 말씀을 듣게 되고, 또 다양한 세미나를 통하여 열매 맺는 삶에 대한 실제적인 강의를 듣게 될 것입니다.
 
예전에는 교회들마다 자기들이 얼마나 굉장한 선교사업을 하고 있는지 자랑했습니다. 그래서 대형교회 주보 밑에는 자기들이 돕고 있는 선교사들의 명단을 깨알같이 글씨로 올렸습니다. 어떤 교회는 50명의 선교사를 후원하고, 어떤 교회에서는 100명의 선교사를 후원하고, 어떤 교회에서는 150명, 200명의 선교사를 후원한다고 자랑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게 많은 선교사들을 후원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막상 선교사를 후원하는 자신들이 올바른 크리스천의 삶을 살지 않는데, 그런 자랑들이 모두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우리교회 선교 많이 하고 있다”고 자랑하면서 막상 자기 자신은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줄 열매가 하나도 없는데, 그 자랑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지금 한국의 대형교회들마다 세상에 보여줄 열매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 속속 드러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현지에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들의 헌신이 의미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과거의 선교에 대한 반성과 함께 선교지와 우리의 삶의 현장을 분리시키지 말고 둘을 하나로 통합하자는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 자신들이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세상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Go into all the world and preach the good news to all creation (마가복음 16:15)”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우리 각자의 삶의 현장으로 침투해 들어가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굳이 예수를 믿으라고 선포하지 않아도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아름다운 열매를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야 합니다.
 
며칠 전에 신문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주윤발이라는 홍콩 배우가 있습니다. 이 사람이 출연한 대표작이 1967년에 상영된 ‘영웅본색 ((英雄本色)’이라는 영화입니다. 영어 제목은 ‘A Better Tomorrow (더 나은 내일)’입니다. 원래 영어 제목은 ‘Story of a Discharged Prisoner (출감한 한 죄수 이야기)’였는데, 이 영화가 세 차례 리메이크가 되면서 영어 제목이 ‘A Better Tomorrow’로 바뀌었습니다. 주윤발은 이 영화로 스타가 된 홍콩 배우입니다.
 
주윤발이 최근에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한다고 선언했습니다. 기부금 액수가 홍콩 돈으로 56억입니다. 한국 돈으로는 8,100억입니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돈은 내 것이 아니라 내가 잠시 보관하는 것이다.” 그는 지금도 자가용을 타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한다고 합니다. 대중 교통을 이용하면서 팬들과 인증 사진을 찍는 것이 그의 평범한 일상생활이라고 합니다. 취미생활도 돈이 들지 않는 걷기와 낚시라고 합니다. 그는 노키아 전화기를 17년째 사용하다가 고장이 났는데 더 이상 서비스를 받을 수 없어서 최근에 바꿨다고 합니다. 옷도 아주 검소하게 입는다고 합니다. “옷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려고 입는 게 아니라 내가 편하면 그만이다”라는 소신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용돈은 한 달에 12만원을 쓴다고 합니다. 저는 이 기사를 보면서 확인할 길은 없지만 주윤발이 크리스천이 맞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돈에 대한 그의 철학은 크리스천의 스튜워드십 (stewardship)에서 나온 것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확인해 보았더니 아쉽지만 불교 신자였습니다. 한국 연예계에서도 연일 주윤발이 화제라고 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열매를 맺는 삶을 살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열매 맺는 비결을 포도나무의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우선 열매를 잘 맺으려면 불필요한 가지를 잘라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절). 포도나무를 기르는 사람들에게는 불필요한 가지를 잘라주는 전지 작업 (pruning)이 필수적입니다. 그래야 크고 탐스러운 포도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도 불필요한 가지를 잘라줘야 열매를 잘 맺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해 준 말 때문에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는 3절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 배울 수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실천할 때 정원사이신 하나님은 내 안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잘라 내시는 작업을 하십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천으로 살고 있으면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유는 열매를 맺는 데 불필요한 것들을 잘라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지작업을 해 주지도 않고 내년에 좋은 열매가 열리기를 기대하는 어리석은 농부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둘째로,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잘 붙어 있어야 합니다. 포도 열매는 포도나무에 열리는 것이 아니라 가지에 열립니다. 그 가지가 포도나무에 잘 붙어 있어야 포도나무로부터 수액(水液, sap)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잘 붙어 있지 않아서 수액을 받지 못하면 금방 말라 죽고 말 것입니다.
 
크리스천의 삶에서 열매를 맺는 비결이 똑 같습니다. 주님은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정원사이시다 (1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포도나무 가지인 우리가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잘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주님과 우리 사이에 ‘교제 (fellowship)’가 생겨야 합니다. ‘fellowship’이라는 단어를 보면 교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fellow’라는 말은 친구라는 뜻입니다. ‘fellowship’ 그러면 ‘친구 관계’ ‘친구 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fellowship’을 갖는다는 것은 예수님과 친구 사이가 된다는 뜻입니다. 재미 있지 않습니까? 성경에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 중에서 하나님과 가장 ‘fellowship’을 잘 나누었던 사람이 누구였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1위는 모세였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과 모세 사이는 친구 사이였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마치 사람이 자기 친구에게 말하듯이 모세와 얼굴을 맞대고 말씀하셨습니다 (The LORD would speak to Moses face to face, as one speaks to a friend).” (출애굽기 33:11) 2위는 아브라함입니다. 성경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친구라고 불렀다 (이사야 41:8, 야고보서 2:23)”는 말씀이 나옵니다.

문제는 우리도 예수님과 그렇게 친한 친구 사이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것을 행하면, 너희는 내 친구다 (You are my friends if you do what I command).” (요한복음 15:14) 예수님과 우리가 진한 fellowship를 나누는 사이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고 실천해야 합니다. 아주 쉬운 말씀인데, 많은 사람들이 이 쉬운 말씀을 따르지 않습니다. 예수님 말씀을 실천하지 않으면서 QT나 말씀 묵상을 통해서 예수님과 fellowship을 나누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착각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fellowship을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친한 친구 사이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와 서먹서먹하거나 낯을 가리는 그런 사이가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나와 함께 fellowship을 나누자고 우리를 먼저 초대하십니다. “내 안에 있어라. 그러면 나도 너희 안에 있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가지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않으면, 스스로는 열매를 맺을 수 없다.” (4절)
 
이 말씀 속에 열매 맺는 믿음생활의 비밀이 들어 있습니다. 먼저 “내 안에 거하라”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영어 성경에 보면 이 말씀이 “Remain in me”라고 나와 있습니다. “내 안에 머물러 있어라, 내 안에 있어라” 이런 뜻입니다. 그런데, KJV이나 NASB, ESV에 보면 “Abide in me”라고 했습니다. ‘abide’라는 말은 ‘remain’이라는 뜻도 있고, ‘to have one’s abode (주소를 가지다, 거주지를 가지다)’ 이런 뜻입니다. 말 그대로 해석하면, 우리의 거주지, 우리의 주소가 예수님이 되는 것입니다. “내 안에 거하라”는 말은 “나와 함께 살자. 내 집으로 주소를 정해라” 이런 뜻입니다.
 
주님은 억지로 내 마음의 문을 열게 하고 내 안으로 들어오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먼저 예수님 안으로 들어오기를 바라십니다. 앤드류 머레이 (Andrew Murray, 1828-1917, South Africa)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It is the wholehearted surrender in everything to do His will, that gives access to a life in the abiding enjoyment of His love (무슨 일을 하든지 그의 뜻을 따르겠다고 온 마음을 그분께 드리는 것은 곧 그의 사랑의 기쁨 속에 거하는 삶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는 또 이런 말도 했습니다. “Let me learn the lesson. Abiding is to be an act of the will and the whole heart (거한다는 것은 곧 의지와 온 마음의 행위이다).”
 
주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영혼 없는 말 장난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주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온 마음으로 우리의 의지를 주님께 드리는 행위입니다. 이런 의지의 결단이 주님께 드려질 때 주님과 나 사이에 진정한 ‘fellowship’이 생기고, 그 때 우리의 삶에 열매가 열립니다. 지금까지 오랫동안 믿음생활 했는데도, 오랫동안 교회생활 했는데도 열매 맺는 은혜와 기쁨과 감사를 몰랐던 사람들은 과연 주님과 나 사이에 ‘fellowship’이 있었는지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가지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않으면, 스스로는 열매를 맺을 수 없다 (For a branch cannot produce fruit if it is severed from the vine, and you cannot be fruitful unless you remain in me).” (4절)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열매 맺는 원리를 무시하고, 자기 힘으로 열매를 맺으려고 애쓰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 중에도 이런 오류를 범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열매 맺는 일이 먼저가 아니라, 주님과의 ‘fellowship’이 먼저입니다. 주님과 ‘fellowship’이 있는 사람에게 열매는 저절로 열리는 것입니다. 열매는 ‘fellowship’의 결과로 얻는 생산물(product)이지 우리가 애써서,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결과가 아닙니다. 오늘 주님이 주신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