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8:28-37

28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즉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부름을 입은 사람들의 선을 위하여 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29 하나님께서는 전부터 아셨던 사람들을 그분의 아들과 동일한 형상을 갖도록 미리 정하시고, 하나님의 아들을 많은 형제들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30 하나님께서는 미리 정하신 사람들을 부르셨고, 부르신 사람들을 의롭다고 하셨고, 의롭다고 하신 사람들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31 이 점에 대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시라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32 자기 아들까지도 아끼지 않고 우리 모두를 위해 내어 주신 분께서 그 아들과 함께 우리에게 모든 것을 은혜로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33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누가 고소할 수 있겠습니까? 의롭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신데,
34 누가 감히 죄가 있다고 판단하겠습니까? 죽으신 분은 그리스도 예수이십니다. 그분은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면서 우리를 위해 중보 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아니면 어려움입니까? 핍박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아니면 칼입니까?
36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우리는 하루 종일 주님을 위해 죽음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도살당할 양과 같은 대접을 받았습니다.”
37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을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기고도 남습니다.

28 And we know that God causes everything to work together① for the good of those who love God and are called according to his purpose for them. / ①Some manuscripts read And we know that everything works together
29 For God knew his people in advance, and he chose them to become like his Son, so that his Son would be the firstborn among many brothers and sisters①. / ①Greek brothers
30 And having chosen them, he called them to come to him. And having called them, he gave them right standing with himself. And having given them right standing, he gave them his glory.
31 What shall we say about such wonderful things as these? If God is for us, who can ever be against us?
32 Since he did not spare even his own Son but gave him up for us all, won't he also give us everything else?
33 Who dares accuse us whom God has chosen for his own? No one?for God himself has given us right standing with himself.
34 Who then will condemn us? No one?for Christ Jesus died for us and was raised to life for us, and he is sitting in the place of honor at God's right hand, pleading for us.
35 Can anything ever separate us from Christ's love? Does it mean he no longer loves us if we have trouble or calamity, or are persecuted, or hungry, or destitute, or in danger, or threatened with death?
36 (As the Scriptures say, "For your sake we are killed every day; we are being slaughtered like sheep."①) / ①Ps 44.22
37 No, despite all these things, overwhelming victory is ours through Christ, who loved us.

오늘 송구영신(送舊迎新) 예배를 드리면서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은 말씀은 로마서 8:28-37에 있는 말씀입니다. 교회생활을 좀 하고, 믿음이 좀 들어간 사람들에게는 오늘 말씀이 매우 익숙한 말씀입니다. 설교 시간이나 성경공부 시간에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이 얼마나 우리에게 중요한 말씀이고, 의미가 있는 말씀인지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 말씀이 중요한 이유는, 첫째로, 이 말씀이 우리의 삶의 의미를 밝혀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자신의 삶에 대한 의미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나에 삶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참을 수 있고, 기다릴 수 있고,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삶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견딜 힘이 없습니다. 계속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일찍부터 알고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를 선택하신 이유는 그의 아들을 본받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29절). 그 아들을 본받게 한다는 말씀의 의미는 우리를 그의 자녀로 삼아서 그의 아들과 형제가 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 so that his Son would be the firstborn among many brothers and sisters’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정말 엄청난 일입니다. 결코 아무 생각 없이 교회를 왔다 갔다 하면서 세월을 보내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예수님과 형제가 되고,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일입니다. 

둘째로, 이 말씀이 중요한 이유는,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길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1절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시라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31절) “If God is for us, who can ever be against us?” 성경에는 이와 같은 뜻의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시편 144:1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편 146:5)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시편 33:12) 또 시편 118편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계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내게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여호와가 나와 함께 계십니다. 그분은 나를 돕는 분이십니다......사람을 의지하는 것보다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고관들을 의지하는 것보다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6-9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곧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이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 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신다면 아무도 우리를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세상에 겁낼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한자 말에 ‘아전인수(我田引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붙여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이 되고, 하나님이 우리 편이라는 말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라고 말할 때는 우리가 진리편에 서 있어야 합니다. 불의한 일에 개입된 사람이 하나님께 피한다고 하고, 하나님이 나의 편이라고 하고,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이 바로 아전인수격으로 성경 말씀을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그런 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언제나 진리편에 서 있어야 합니다. 불의한 일에 개입해서는 안 됩니다.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 (Martin Luther, 1483-1546)가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만들어 비텐베르크 (Wittenberg) 대학의 교회 게시판에 붙인 것이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 교황의 지위와 권력에 도전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습니다. 루터가 자기 주장을 철회하지 않자 교황 레오 10세는 루터를 국회에 소환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관습으로 볼 때 루터는 화형(火刑)을 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때 루터가 했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Here I stand. I can do no other. God help me. Amen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는 달리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저를 도와주십시오.”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루터가 진리 편에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루터 편에 서 계셨고, 루터를 도와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나의 도움으로 삼고 인생을 살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언제나 진리 편에 서 계십시오. 불의한 일에 가담하지 말고 늘 옳은 편에 서 계십시오. 당장에 눈에 보이는 이익이 없어도 진리 편에 서 있으면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셋째로, 이 말씀이 중요한 이유는, 이 말씀 속에, 나의 삶을 해석할 수 있는 성경적인 ‘패러다임 (paradigm)’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패러다임’이라는 말은 어떤 일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시스템, 혹은 틀 (frame)을 말합니다. 누구나 자기 나름의 ‘paradigm’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 안에도 인간의 불행을 해석할 수 있는 ‘패러다임’이 있습니다. 창세기를 읽어 보면, 그 속에 요셉이라는 사람의 일생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환하게 들여다 보입니다. 그 이유는 성경이 인간의 고난을 해석하는 해석의 ‘패러다임’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8절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즉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부름을 입은 사람들의 선을 위하여 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And we know that God causes everything to work together for the good of those who love God and are called according to his purpose for them).” 우리에게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기쁜 일도 일어나고, 슬픈 일도 일어나고, 불행한 일도 일어납니다. 기쁜 일은 일어나도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불행한 일이 일어날 때 우리는 당황하고 낙심하고, 좌절하고, 절망에 빠집니다. 누구도 예외가 아닙니다. 저에게 불행한 일이 일어난다면 저 역시 절망할 것입니다. 이 때 자신의 불행을 해석할 ‘패러다임’이 없다면, 우리는 불행을 이길 수 없습니다. 특히 청년들이 나에게 왜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지 해석하고 받아들일 능력이 없다면, 어쩌면 자기 삶을 포기하게 되고, 자기 삶을 송두리째 망쳐버릴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순간부터 우리의 삶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우리는 그저 어쩌다가 태어난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고,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부터 우리의 삶에 의미가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은 그것들이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사용되도록 하십니다. 다시 28절 말씀을 보십시오. “God causes everything to work together for the good of those who love God and are called according to his purpose for them.” 유명한 예레미야 29:11-13 말씀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너희를 위해 세운 나의 계획은 너희에게 재앙이 아닌 희망이 넘치는 미래를 주는 것이다. 너희가 내 이름을 부르고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의 기도를 들어주겠다. 너희가 온전한 마음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날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지금 내 삶에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불행한 일을 겪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 걱정하지 마. 다 잘 될 거야!” 하고 위로합니다. 오늘 말씀은 결코 그런 값싼 위로의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 수를 놓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여러가지 색실들을 이용하여 수를 놓습니다. 다양한 색실들을 이용하면 더 멋진 수를 놓을 수 있습니다. 광부들이 사는 마을에서 불행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갱이 무너지는 바람에 많은 광부들이 죽은 것입니다. 여기저기서 불행을 당한 가족들을 위로하려고 왔습니다. 그런데,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무슨 말도 불행을 당한 가족들을 위로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 목사님이 그 마을에 왔습니다. 그 목사님은 “여러분, 지금 제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예. 아름답게 수를 놓은 북마크입니다. 여러분 여기를 보십시오” 하면서 북마크 뒷면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러저리 색실들이 얽혀 있었습니다. “여러분, 보다시피 색실들이 얽혀 있어서 뒷면에 무엇이 수놓아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당하고 있는 이 상황이 바로 이렇습니다. 왜 나에게, 우리 가정에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났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뒷면을 보십시오” 하면서 북마크의 뒷면을 보여주었습니다. 거기에 “God is love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수놓아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 목사님의 말에 위로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오래 전에 어느 글에서 읽었는데, 오늘 마침 생각이 나서 여러분과 같이 나누었습니다. 

우리에게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나 성공이나 실패나 궂은 일이나 좋은 일이나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한 올의 실이 되어 색색가지의 아름다운 수를 놓습니다. 수를 놓는데 여러 가지 색실이 필요합니다. 빨강, 노랑, 파랑, 이런 색실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검은 색실도 필요하고, 어둡고 칙칙한 색실도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다양한 색깔의 실을 가지고 그분이 원하는 수를 놓습니다. 뒷면을 볼 때는 색실들이 어지럽게 얽혀 있어서 앞면에 무슨 수가 놓였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거기에 아름다운 수가 놓여 있습니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이 시간, 제가 여러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나의 삶에는 의미가 있다는 것, 우리는 혼자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성경적인 해석의 ‘패러다임’을 말씀드렸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하나님은 그 일들을 사용하셔서 선한 일을 이루십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한 해를 살 수 있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다 함께 31절 말씀을 읽어 볼까요?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기고도 남습니다 (No, despite all these things, overwhelming victory is ours through Christ, who loved us).” (37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