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4:17, 20-24

17 이제 나는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강하게 권고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살지 마십시오....... 20 여러분은 그리스도에 관해 그렇게 배우지 않았습니다. 21 나는 여러분이 진정 그분의 말씀을 들었고, 또 진리 되신 그분 안에 살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22 옛 모습을 벗어 버리십시오. 옛 사람은 한없는 욕망으로 점점 더 눈이 어두워져 더 악하고 더러운 모습이 될 뿐입니다. 23 여러분은 마음을 새롭게 하라는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24 이제는 새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모습처럼 선하고 거룩하게 살아가십시오. (쉬운성경)

 

17 With the Lord's authority I say this: Live no longer as the Gentiles do, for they are hopelessly confused.......20 But that isn't what you learned about Christ. 21 Since you have heard about Jesus and have learned the truth that comes from him, 22 throw off your old sinful nature and your former way of life, which is corrupted by lust and deception. 23 Instead, let the Spirit renew your thoughts and attitudes. 24 Put on your new nature, created to be like God—truly righteous and holy. (New Living Translation)

2023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누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1월을 영어로 ‘재뉴어리(January)’라고 하는데요. 이 말이 ‘야누스(Janus)’라는 로마의 신의 이름에서 왔다고 합니다. ‘야누스’ 신은 처음과 끝, 시작과 변화의 신으로,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뒤를 돌아보는 얼굴을 하고 있고, 다른 하나는 앞을 바라보는 얼굴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의 심정을 잘 나타내는 말이 아닌가 합니다. 

여러분은 새해를 어떻게 살고 싶으신가요? 제가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지금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이 때가 과거 어느 때보다 더 특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의 ‘시대적인 사명’을 반복해서 말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냥 “열심히 믿음생활 해야지!” “열심히 은혜를 사모하고 기도해야지!” 이런 결심만 가지고는 부족한, 절박한 시점에 우리가 서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로마서 12:1)”고 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분별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시대적인 요청 속에 지금 우리가 서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 지금까지의 믿음생활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에베소서 본문 말씀에 “믿지 않는 사람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살지 마십시오(Live no longer as the Gentiles do, for they are hopelessly confused, 17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현대어 성경에 이 말씀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이제 나는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더 이상 구원받지 못할 자들이 사는 방식대로 살지 마십시오. 그들은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그들은 마음을 닫고 깜깜한 어둠에 갇혀 지냅니다.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닫아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에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길을 깨닫지 못합니다.”

이 말씀에서 주목해서 봐야 할 말씀은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혼란에 빠져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혼란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그른지 ‘기준(standard)’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진리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이 없는 시대입니다. 모두 각자가 믿는 대로 사는, 진리에 대한 주관적인 기준을 가지고 사는 시대입니다. 여러분, ‘정경(正經)’이란 말을 아시는가요? 많은 성경 문서들 중에서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을 골라서 ‘정경’으로 정했습니다. ‘정경’을 영어로 ‘Canon’이라고 하는데요. 이 말에 ‘principle’ ‘rule’ ‘law’ ‘norm’ ‘measure’ ‘standard’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교회는 ‘정경’을 결정할 때 66권의 성경이 충분한 삶의 ‘기준’이 된다고 믿었습니다. 우리가 혼란에 빠지는 이유는 성경을 ‘기준’으로 삼고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디모데후서 3:16 말씀을 아시지요? “모든 성경 말씀은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셔서 기록되었기 때문에 진리를 가르쳐 주며, 삶 가운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게 해 줍니다. 또한 그 잘못을 바르게 잡아 주고 의롭게 사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제자 디모데에게 썼을 때 디모데는 한창 때의 청년이었습니다. 청년의 때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때입니다. 좋은 쪽으로 가능성이 열려 있기도 하지만 나쁜 쪽으로 가능성도 열려 있습니다. 청년의 시기를 보내고 있던 디모데에게 인생의 올바른 길을 가르쳐 줄 ‘멘토(mentor)’가 필요한 시기였습니다. 그 때 바울이 이런 편지를 보냅니다. “Run from anything that stimulates youthful lusts. Instead, pursue righteous living, faithfulness, love, and peace. Enjoy the companionship of those who call on the Lord with pure hearts(청년 시기의 욕망을 자극하는 어떤 것도 피해야 합니다. 그대신 의로운 삶과 믿음, 사랑, 그리고 평화를 추구하십시오.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부르는 사람들과 우정을 나누십시오).” (디모데후서 2:22) 저는 우리 교회의 청년들이 이런 식으로 청년의 시기를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둘째로, 우리가 주목해서 봐야 할 말씀은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닫고 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난 날 우리들의 삶의 모습을 지적하는 말씀입니다. 마음을 닫으면 그 사람이 하는 말이 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열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하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고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최상의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원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이것이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다(We are created according to God’ image)”는 창세기 1:26-27 말씀의 뜻입니다. 그런데 죄가 우리 속에 들어오면서부터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막고, 마음을 닫고, 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은 인간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다윗이 지은 시편 23:1 말씀이 바로 이런 삶에 대한 고백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The LORD is my shepherd, I shall not be in want).”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삼고 목자의 인도를 받으며, 목자의 뜻에 순종하며 사는 삶이 우리 모두가 살아야 하는 삶의 모습이며, 이런 삶에는 참 만족이 주어진다는 고백입니다.

바울은 지난 날의 우리의 삶을 ‘Your former way of life which is corrupted by lust and deception(정욕과 속임수로 타락한 이전의 삶의 방식)’이라고 한마디로 정리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정욕(lust)’이라는 말을 나쁜 의미로 생각합니다. ‘정욕(情欲)’에 빠져 있는 사람은 형편없는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나는 ‘정욕’에 빠져 살지는 않았으니까 그래도 괜찮게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정욕’이라는 말은 자기 마음에 이끌리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욕이나 식욕, 욕심을 잘 조절해야 하는데, 조절하지 못하고 본능 대로 행동하는 것을 ‘lust(정욕)’이라고 합니다. 2,000년 전에 바울이 비판했던 에베소 교회 교인들의 삶은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삶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지금까지 ‘정욕’에 이끌려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내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결심과 마음의 결단이 있었습니까?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렇게 살면 안 되기 때문에 포기한 것들이 있었습니까? 희생한 것들이 있었습니까?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내 생각을 바꾸고 내 계획을 바꾼 것들이 있었습니까? 아니잖아요? 내가 원하는 대로, 내 생각 대로 살아가면서 주일이 되면 피곤한 얼굴로, 습관적인 태도를 가지고 예배를 드리지 않았습니까? 

새해에는 우리의 삶의 방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 23-24절을 보세요. “Let the Spirit renew your thoughts and attitudes. Put on your new nature created to be like God—truly righteous and holy(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과 태도를 바꾸시도록 허락하십시오. 하나님을 닮도록 새롭게 창조된 본성을 옷 입으십시오).” 그동안 우리가 가지고 있던 마음과 태도를 바꾸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을 닮도록 새로운 본성을 가져야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 말씀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결심만 가지고는 결코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를 새로운 사람으로 만드는 주체(主體, subject)가 누구인지 보십시오. ‘성령(the Spirit)’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과 태도를 새롭게 만드는 주체입니다. 그러므로, “Let the Spirit renew your thoughts and attitudes(성령께서 당신의 마음과 태도를 새롭게 하시도록 허락하라)”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보여주는 ‘새로운 삶의 길’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이 주어지지 않는 이유는 새로워지는 길을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훌륭한 제자의 삶을 가르쳐 준 Oswald Chambers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The moral miracle of redemption is that God can put a new nature into me through which I can live a totally new life(구원의 도덕적인 기적은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나에게 새로운 본성을 넣어 주실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말씀에 동의하십니까? 

그러면, 왜 우리는 그동안 살아왔던 삶의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분별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말씀을 한번 보십시오. “여러분은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Don't copy the behavior and customs of this world, but let God transform you into a new person by changing the way you think. Then you will learn to know God's will for you, which is good and pleasing and perfect).” (로마서 12:2) 크리스천의 삶의 최종 목표는 하나님 뜻을 분별하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분별하기 위해서 우리는 생각하는 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이 사람이 성경이 말하는 ‘새 사람’입니다. 어떻게 ‘새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성경 말씀을 보십시오. “Let God transform you into a new person(하나님께서 당신을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시키시도록 허락하라).” 우리는 새 사람이 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부지런히 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영영 주어지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저의 설교를 들으신 분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저의 설교의 키워드는 ‘교회의 시대적인 사명’입니다. 이 말은 교회가 시대의 요청에 응답하는 책임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지난 3년 동안 경험했던 팬데믹은 알게 모르게 많은 분야에서 우 리의 의식구조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팬데믹이 아니었으면 도저히 바뀔 것 같지 않는 것들 이 바뀐 것입니다. 이제 세계는 팬데믹 이전의 세계와 팬데믹 이후의 세계로 바뀔 것이라고 예측했던 전문가들의 예측이 하나, 둘 맞아 떨어지고 있습니다. 유발 하라리(Yuval Harari) 의 말을 들어 볼까요? “We can choose what the world looks like when the pandemic is over(우리는 펜데믹이 끝났을 때 세계가 어떤 모습일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의 말은 지 금 우리가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시점에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선택이 미래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이런 전문가들의 예측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기업이나 회사들, 마켓들이 얼마나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요지부동입니다. 바뀐 것이 없습니다. 온라인 예배가 활성화되고, 교회 안에서 마스크를 쓰고, 예배 후에 있는 친교시간이 간소하게 된 것 외에 본질적으로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세상은 변화를 수용하고 있는데, 교회는 변화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바빌로니아를 시켜 유다 왕국을 침략하여 망하게 하고, 유다 백성들이 70년 동안 바빌로니아에 포로생활을 하게 한 후에, 자기 백성들을 새롭게 창조하여 고국으로 돌려보내려는 하나님의 뜻을 읽지 못했던 당시의 유다 백성들이 예언자 예레미야를 핍박하고, 감옥에 가두고, 조국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바빌로니아에 저항했던 역사와 흡사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판을 새로 짜고 계십니다. 그런데, 교회들은 이런 하나님의 의도를 읽지 못하고 팬데믹 이전의 교회를 그리워하며 그 때로 돌아가려 하고 있습니다. 

저는 감리교회에서 영향력 있는 목사님의 설교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교회도 크고 교인수도 많습니다. 그 목사님은 감리교 안에서 설교를 잘하시는 목사님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분입니다. 저는 그분의 설교를 들으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교회에 재미 있는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어서 교회에 나오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목사님의 설교에서 시대적인 전환기에 대한 문제 의식이나 위기 의식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교회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팬데믹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교회가 세상을 향하여 일방적인 메시지를 선포하던 시대를 끝내고, 이제는 개인 개인의 크리스천들이 세상을 향해서 메시지를 선포해야 하는 시대를 열고 계십니다. 보세요. “여러분 자신이들이 모든 사람들이 읽고 있는 우리의 편지입니다. 여러분은 우리의 사역의 결과로 나타난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편지입니다.......우리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서 이러한 확신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3:2-4) 2,000년 전에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게 썼던 이 편지 구절이 오늘 우리 마음에 확 다가오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시대는 개인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여러분의 몸에서 예수님의 냄새가 나야 합니다. “아, 이 사람의 몸에서 예수님의 냄새가 나는구나!”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자기가 나가는 교회의 규모와 크기를 자랑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이제는 교회가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교회라는 것을 새롭게 인식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새 시대는 크리스천 개인들이 얼마나 진실한 크리스천의 삶을 사느냐 하는 것을 키워드로 삼아야 하는 시대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그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요한복음 4:23-24) 예수님은 당시의 성전 예배를 통해서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이 아니라 어디서든지 하나님을 예배하는 때가 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요한복음 4:21). 우리는 이 예수님의 말씀의 뜻을 잘 몰랐습니다. 

그러면, 이제 기존의 교회는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교회는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기르는 일을 해야 합니다. 길러서 세상으로 내보내야 합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일터에서, 강의실에서, 실험실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훌륭하게 살아가도록 양육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인 결정을 해야 할 때 크리스천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들로,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하고 섬기는 사람으로, 자신이 희생해야 할 자리에서 망서리지 않는 사람으로, 책임져야 할 자리에서 도망가지 않는 사람으로 양육하는 일을 교회가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대한 새로운 판을 짜고 계십니다. 지금까지 교회가 주어진 사명과 역할을 올바로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위기(危機, crisis)의 때입니다. 위기는 곧 기회이기도 합니다. ‘교회의 시대적인 사명’을 목사가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온 교인들이 이 인식을 함께 공유해야 합니다. 무늬만 크리스천인 사람들이 모여 예배하던 때는 지났습니다. 우리는 지금 절박한 시점에 서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하나님께서 하고 계시는 일을 올바로 분별하고 응답하지 않으면 우리는 철저하게 버림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교회의 시대적인 사명’을 주장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