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9: 23-28,32-41

23  그 무렵, 에베소에서는 사도들이 전한 주님의 말씀으로 인해 큰 소동이 일어났다. 24 아데미 여신의 모형 신전을 만드는 ‘데메드리오’라는 은세공업자는 직공들에게 적잖은 돈벌이를 하게 해주는 사람 이었다. 25 그가 직공들과 그 일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한자리에 불러 놓고 말했다. “여러분,아시다시피 우리는 이 사업으로 돈벌이가 꽤 괜찮았었습니다. 26 그런데 여러분이 듣고 또 보시는 바와 같이, 저 ‘바울’ 이라는 작자가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결코 신일 수가 없다고 말하고 다니는 통에, 우리 장사가 아주 큰 타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기 에베소뿐만 아니라, 아시아 지방의 거의 대부분이 이런 실정입니다

27 이 일을 이대로 방치해 두면, 우리 사업의 평판이 크게 나빠지게 될 뿐만 아니라, 위대한 아데미 여신의 신전이 그 영향력을 잃게 됩니다. 아시아 지방은 물론, 전 세계에 걸쳐 숭배되었던 아데미 여신의 위신이 땅에 떨어질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28 이 말을 듣고, 모인 사람들은 크게 화를 내면서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에베소 사람의 위대한 여신, 아데미 만세!…32 에베소의 원형극장 안은 아수라장이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중구난방으로 마구 떠들어 댔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왜 그 자리에 오게 되었는지 조차도 알지 못했다. 34 그러나 그가 유대인이라는 것을 알아챈 군중은, 한 목소리로 거의 두 시간 동안이나 “에베소 사람의 위대한 여신, 아데미 만세! 에베소 사람의 위대한 여신, 아데미 만세!” 하면서, 미친 듯이 외쳐 댔다. 35 결국 에베소 시청의 서기관이 나서서, 군중을 진정시킨 뒤 말했다. “에베소 시민 여러분, 에베소가 위대한 여신 아데미를 숭배하고, 또 하늘에서 내려온 그 신상을 수호하는 것은 온 세상이 다 아는 일입니다. 36 이런 사실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모두들 진정하시고 경솔한 행동을 삼가 하시기를 바랍니다. 37 여러분들이 이리로 끌고 온 이 두 사람은, 아데미 여신의 신전에서 무엇을 훔친 것도 아니고, 또 아데미 여신을 모독한 일도 없습니다. 38 그러므로 데메드리오와 그의 동료 직공들은 불만이 있다면 그 사람들을 정식으로 고소하도록 하십시오. 에베소의 법정은 항상 열려 있고, 거기에는 재판관들도 있습니다.39 그 밖에 여러분이 제기하고 싶은 사안들이 더 있거든, 그런 것들은 공적인 정식 집회에서 안건으로 다루어야 할 것입니다. 40 사실, 오늘의 이 사건은 소요죄로 고발될 수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 우리에게는 이런 소동을 벌일 만한 뚜렷한 이유와 정당한 근거가 없기 때문에, 로마 정부로부터 문책을 당할 때 해명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41 이렇게 말한 다음, 그는 원형극장에 몰려든 군중들을 해산시켰다. (쉬운말 성경)

23 About that time, serious trouble developed in Ephesus concerning the Way. 24 It began with Demetrius, a silversmith who had a large business manufacturing silver shrines of the Greek goddess Artemis. He kept many craftsmen busy. 25 He called them together, along with others employed in similar trades, and addressed them as follows: “Gentlemen, you know that our wealth comes from this business. 26 But as you have seen and heard, this man Paul has persuaded many people that handmade gods aren’t really gods at all. And he’s done this not only here in Ephesus but throughout the entire province! 27 Of course, I’m not just talking about the loss of public respect for our business. I’m also concerned that the temple of the great goddess Artemis will lose its influence and that Artemis—this magnificent goddess worshiped throughout the province of Asia and all around the world—will be robbed of her great prestige!”28 At this their anger boiled, and they began shouting, “Great is Artemis of the Ephesians!”…32 Inside, the people were all shouting, some one thing and some another. Everything was in confusion. In fact, most of them didn’t even know why they were there. 33 The Jews in the crowd pushed Alexander forward and told him to explain the situation. He motioned for silence and tried to speak. 34 But when the crowd realized he was a Jew, they started shouting again and kept it up for about two hours: “Great is Artemis of the Ephesians! Great is Artemis of the Ephesians!”35 At last the mayor was able to quiet them down enough to speak. “Citizens of Ephesus,” he said. “Everyone knows that Ephesus is the official guardian of the temple of the great Artemis, whose image fell down to us from heaven. 36 Since this is an undeniable fact, you should stay calm and not do anything rash. 37 You have brought these men here, but they have stolen nothing from the temple and have not spoken against our goddess 38 “If Demetrius and the craftsmen have a case against them, the courts are in session and the officials can hear the case at once. Let them make formal charges. 39 And if there are complaints about other matters, they can be settled in a legal assembly. 40 I am afraid we are in danger of being charged with rioting by the Roman government, since there is no cause for all this commotion. And if Rome demands an explanation, we won’t know what to say.” 41Then he dismissed them, and they dispersed. .(New Living Translation)

 

팀켈러 목사는 내가 만든 신이라는 그의 책에서 앤드류 카네기의 자서전 이야기를 실었습니다. 그는 33세의 나이에 세계 최고의 수익을 올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자신을 성찰하며 나에게 쓰는 글을 작성했습니다. “인간에게는 우상이 있을 수 밖에 없는데, 부의 축척은 우상숭배 중에서도 최악에 속한다. 돈을 숭배하는 것보다 사람의 격을 떨어 뜨리는 우상은 없다. 그러므로 가장 고상한 성품을 길러 줄 삶을 신중히 선택하려면 나는 매사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나치게 긴 세월을 사업 걱정에 매달려 최단기간에 돈을 더 벌 생각밖에 모른다면, 영영 회복될 가망 조차 없이 삶이 저급해 질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서른다섯에 사업에서 손을 뗄것이며, 앞으로 2년 동안도 오후 시간은 꼭 공부하고 체계적으로 책을 읽으며 보내고 싶다카네기는 젊은 나이에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된 후 이 엄청난 사실을 깨닫게 되지만 그의 자서전에 보면 깨닫고 난 후에도 여전히 사업에서 손을 떼지 못하고 우려 했던 대로 삶의 격을 떨어뜨리는 삶의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마음 안에 우상이 있음을 깨달아도 그 우상을 밀어내는 구원의 힘이 우리 안에 없습니다. 구원자 되시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구원이 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음의 죄성과 연약함을 온전히 바라보게 하시고 죄로 무뎌지는 마음을 날마다 회개하게 하십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보다 더 바르고 선하며 큰 사랑을 베푸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점잖고 고상하고 선한 사람도 마음안에 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안에서 내 마음 안에 선한 것이 없음을 마주할 때마다 하나님의 사랑을 구하고 거룩한 삶을 만나게 됩니다.

 

신상 앞에서 3천배를 하고, 평생을 수도사로 살며 마음 비워내도 또 생겨나는 것이 죄성입니다. 성경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지식과 선행으로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특별히 모든 종교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범신론적 세계관은 매우 관용적이고 포용적으로 보여집니다. 그래서 유일신을 섬기는 기독교는 배타적인 것처럼 보여지는데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기독교가 종교 이상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복음화율이 현격히 떨어지고 있어서 기독교인들이 사회속에서 차별을 받는 시대입니다. 상황은 달라도 박해받던 초대 교회 시기와 비슷한 상황일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이유를 자신의 능력에 두지 않고, 구원을 주시는 능력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기독교 교리가 비관용적, 비포용적, 비평화적이라고 말하는 종교 다윈주의적 생각도 기독교 진리를 핍박하는 모순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에베소 지역에 살던 주술사들이 회개하고 모든 사람 앞에서 엄청난 양의 주술책들을 태워 버렸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데미 여신을 통해 기념품 사업을 하며 살아오던 데메드리오에게 위기가 닥친 것입니다. 이 지역에 오는 많은 사람들에게 아데미 신으로 만든 기념품을 파는 데메드리오는 세공업자들의 조합장이었습니다. 그는 많은 직공들에게 적지 않은 돈벌이를 제공해 준 듯 보입니다. 당연히 영향력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데메드리오가 생계에 위협을 느끼자 모든 관계자들과 종사하던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전도를 그냥 방치하게 되면 아시아 지방까지 전세계 아데미 여신을 통해 하던 사업이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조합원들에게 불안감을 조장시킵니다. 그의 속마음은 실제로 어땠을까요? 아데미 신전이 위엄이 떨어질 것을 염려한 것도 있겠지만 자신의 돈벌이에 대한 염려가 더 컸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인류역사 이래 돈은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였습니다. 소유를 통해서 인생을 확인하는 삶에 있어서 돈의 힘은 대단합니다. 우리는 이 삶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은으로 아데미 신상을 만들어 팔며 돈을 버는 일과 아데미 신을 믿는 종교성까지 더해지니 데메드리오 외에 그 일을 하던 사람들의 마음에는 분노가 차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28 이 말을 듣고, 모인 사람들은 크게 화를 내면서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에베소 사람의 위대한 여신, 아데미 만세!…32 에베소의 원형극장 안은 아수라장이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중구난방으로 마구 떠들어 댔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왜 그 자리에 오게 되었는지 조차도 알지 못했다.’ 라고 기록합니다.

 

데메드리오의 말에 그 자리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알지도 못한 채 모인 사람들이 원형극장에서 아데미 만세라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물질은 사람들을 사로잡는 힘이 있습니다. 이유도 모른 채 광장에 모여서 온 힘을 다해서 외치는 것입니다. 우상이 점령한 마음에는 스스로 신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대중문화를 이끌어 가는 유명인들을 보면 끊임없는 자기 과시와 소유로 자신을 증명해 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물질의 소유로 우리의 가치를 판단하지 않습니다.

 

흔히 갖게 되는 돈에 대한 첫번째 오해는 내가 번 것이니 내 소유라는 생각입니다. 사람들은 가난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평생을 돈과 씨름하며 살아갑니다. 인생을 가난으로 부터 구원하기 위한 노력입니다. 그 이면에는 인생의 주인이 돈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성경은 “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20:3-5a)

 

말씀 안에 3가지 동사를 보면 만들지 말고, 절하지 말고,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역으로 해석해 보면 돈을 섬기면 돈에게 절하게 되고 돈을 만드는 일을 위해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어떻게 ‘우상을 숭배하게 되는지를 점층적으로 전달해 줍니다. 이 유혹을 끊을 수 있는 힘이 우리 안에 없기 때문에 세상은 돈으로 인해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습니다. 성경은 돈이 절대적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돈 사이에서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돈은 임시적으로 우리에게 허락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돈을 소유한 사람은 없으며 죽을 때 돈을 가지고 가는 사람도 없습니다.( 1:21) 이 오해를 바로 잡게 되면 돈에 대한 시각과 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시각이 달라집니다.

두번째 돈에 대한 오해는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타락으로 인해 나타난 생각은 돈이 큰 힘이 있다고 생각하여 하나님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오해입니다. 사람은 한치 앞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라고 말씀합니다. 인간은 돈으로 인한 근심과 걱정을 하면서 몸속에 작은 세포들이 안 좋은 세포로 변화는 것 조차 인식하지 못하며 살아갑니다. 무엇이든 내 마음대로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면 그것은 자유가 아닙니다. 부모가 되어 보니 자녀에게 위험한 것은 사랑하기 때문에라도 금지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방종으로 가는 마음을 돌이켜 마음이 지향하는 방향이 어디인지를 끊임없이 바라보게 해 주십니다.

 

2천년 전에도 에베소 지역의 사람들은 매년 3–4월을 아데미의 달로 지정하여 각종 축제와 행사를 벌였고 은으로 만든 아데미 신상 모형을 집에 보관하면서 복을 빌었습니다. 아데미는 풍요의 여신으로 가슴에 풍요를 상징하는 24개의 유방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 이 신상의 높이가 대략 130미터, 폭이 75미터나 되는 거대한 신전입니다. 당시 이 여신은위대한 어머니’(the Great Mother)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축복과 풍요를 주는 신이라 여겼으니, 은세공업자들은 아데미 여신의 형상을 만들어 부적이나 작은 신상으로 돈을 번 것입니다. 에베소 소동 사건은 에베소 원형 극장에 분노한 수만명의 사람들이 모여 아데미를 외친 것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70,80년대만 해도 한국교회에 나타난 현상은 예수 믿고 복 받는 것이었습니다. 복음 안에 돈이 우상이 되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으면 건강과 부를 얻고 출세하는 설교를 해야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믿음생활은 어느 편에 설것이가는 선택하는 것입니다. 세상과 다른 방법으로 살아가는 것이지요. 바울은 세상의 신을 모독하거나 훔친 일이 없습니다. 단지 아데미의 신성을 부인했을 뿐입니다. 37절을 보게 되면,

 

37 여러분들이 이리로 끌고 온 이 두 사람은, 아데미 여신의 신전에서 무엇을 훔친 것도 아니고, 또 아데미 여신을 모독한 일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도 존중하고 사랑으로 대해야 합니다. 적대감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 것은 바른 복음이 아닙니다. 가끔 뉴스에 보면 열정주의 신자들이 불교의 불상들을 가서 파괴하고 예불을 드리는 절에서 찬송을 부르며 방해는 하는 일을 하나님을 섬기는 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타종교의 불상보다 더 큰 맘몬이라는 우상을 섬기는 세상의 방법과 다르게 사는 것입니다.  그렇치 않으면 선교하려는 것이 오히려 복음의 문을 막아 버리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복음을 아픈 마음으로 전하기 보다 우리 삶에 허락하신 GOOD NEWS 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복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져야 할 행복한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는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이 있고, 하나님을 만나면 믿음으로 순종하는 은혜의 여정을 만나게 되는것입니다  

 

복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들을 만들어 냅니다.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은 이슬람 열성주의자들처럼 세상과 충돌하고 세상위에서 군림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리차드 니버의 그리스도와 문화’Christ and Culture’을 보면 복음과 문화의 관계를 자세히 설명해 줍니다. 그 중에서도 그리스도를 통한 세상을 변화시키는 모델이 오늘날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문화를 변혁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성육신하신 예수님이 인간의 문화 속으로 들어오셔서 함께하고 계심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지역사회에 이루기 위해서 세상이 악하니까 그들의 문화와 충돌해서 대립하거나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변혁해 나가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선교에 있어서 인간이 무슨 일을 하는가 보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용하고 계시는 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없이도 사역하실 수 있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기쁨을 주시며 그분의 일을 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이 일에 참여하고 있는 것 뿐입니다. 바울은 이 세대를 향해서 하나님의 선하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는 문화를 변화시키라는 사명을 강조합니다.( 12:1,2)  아무리 위대한 과학 기술도 절대적 가치의 자리에 오를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정해 놓은 원리와 법칙을 발견해 낼 뿐입니다.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져버리고 어떤 세상의 우상도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할수 없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는 하나님을 아는 인재들이 세워져야 합니다. 좋은 기독교 사상가의 책이 출판 되면 그 책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이 뿐입니까? 정치, 문화, 사회, 경제, 의료 과학등 수많은 분야에 기독교 인재들을 길러내게 되면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게 될 것입니다. 자기 분야에서 영향력을 지닌 사람들이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로 키워져야 합니다.

 

기독교 세계관은 세상을 성경적 관점으로 보는 것입니다. 개인적 신앙의 바탕 위에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대 문화 양상은 끊임없이 변화되고 있고 흘러가고 있어서 끝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중들은 시대적 흐름에 따라 계속적으로 문화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날의 문화가 지니는 것들이 어떤 의미인지 구별해 낼 줄 알아야 합니다. 앤드류 월즈(Andrew Finlay Walls:1928~ 2021)라는 세계적인 선교 역사학자는 어느 문화에도 속하지 않지만 철저하게 민족들에게 녹아 들어가시는 노예의 하나님이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를, 그리스인들의 하나님 테오스, 독일인들의 하나님 갓트, 중국 사람들의 하나님 썅티, 일본인들의 하나님 가미, 이탈리아인들의 하나님 디오, 프랑스인들의 하나님 쥬(Dieu)라고 부르는 신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심을 모든 민족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만들어 낸 신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을 전하고 그분이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에베소 사람들은 두 시간 동안이나 그들의 풍요의 신 아데미를 불러대며 외쳤습니다. 자신들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하늘의 보화를 버려두고 세상에 잃어버린 흩어진 양들을 찾으러 예수를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구원의 길을 가난한 사람에게도 부유한 사람에게도 열어 주셨습니다. 하늘의 평안은 참 빛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는 한 채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 1:9)

 

37절로 4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데메드리오에 의해서 선동 당한 다음에 엄청난 힘을 보이는 듯 싶지만 아데미 신전에 모인 수만명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데메드리오의 고발은 무고가 되었으며, 바울은 직접 논쟁에 나서지 않은 채 모든 사람들은 해산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서기관을 사용하셔서 바울을 보호하십니다. 에베소에서 일어났던 소동이 잠잠해진것은 로마의 법과 질서를 지켰기 때문입니다. 교회와 성도들도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 안에서 바른 길을 걸어야합니다. 군중 심리에 끌려 마음과 생각을 빼앗기면 안됩니다. 진리의 말씀이 우리의 방향이 되어야합니다. 이러한 소동 앞에서도 분별하는 지혜와 믿음의 성숙이 논란과 혼란을 이겨낼수 있어야 합니다. 진리의 법을 따라서 복음을 전하던 바울은 로마법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도리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된 이들의 의무입니다. 빌라도 법정에서 바라바 대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함성도 데메드리오의 말에 분노하여 외치던 군중들의 외침도 오늘날 시대속에서 가려진 진리와 사랑안에서 몸부림 치는 우리들의 모습임을 보아야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서 하나님의 길을 걷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결코 하나님의 자리에 오를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눈물과 사랑이 세상속에 속하여 갈길을 잃은 우리의 마음에 능력이 되어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사랑도 섬김도 영혼을 향한 마음도 철저히 내안에 있지 않습니다. 모든 능력은 주님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상은 보이는 거대한 신전만이 아닙니다. 매일 머리속에 습관적으로 떠올리는 생각들, 나의 마음에 채워져있는것이 무엇입니까? 말씀을 알아도 하나님 말씀이 마음안에 머물지 않는다면 그 자리는 매일 다른 우상들로 채워질 것이고 그것을 위해 살아가게 되는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따라 매일 매일 걸으라고 하십니다. 그 매일의 은혜가 우리의 한주간의 삶에도 주님의 능력을 됨을 보게 하는 귀한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